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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피아니스트
larayang I 2009-06-02 I 조회 2301
2006년 3월의 어느날.
수원시향과의 협연으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과 3번, 파가니니의
주제에 의한 광시곡을 연주한 보리스 베레조프스키.

비록 2번이 지닌 낭만과 부드러움은 기대했던 것보다 덜했지만, 제게 처음으로
클래식 음악의 매력을 보여주었던 3번은 당시에 느꼈던 감정을 지금도 고스란히
떠올리게 해 줄 정도로 강렬하고, 화려하고 또 아름다웠지요.

일명 Rach 3로 불리는 3번은 호로비츠, 아르헤리치, 키신, 아쉬케나지, 랑랑,
허프와 같은 여러 연주자들의 음반과 수 차례의 실황으로 익숙해져 있었던터라
더 받을 감동도 없을거라 생각했었어요.
그러다 그 날 베레조프스키가 울린 파치올리의 현에서 그 무겁고 어두운 음표들이
엄청난 위압감과 함께 쏟아져 내리는 걸 보았죠. 숨막히는 카덴차가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저만치 사라져 갈 때마다 앞으로만 흘러가는 시간이 하도 야속해서
'끝나면 안돼!'하고 연신 마음 속으로 외쳐가면서요.

그 이후 베레조프스키가 소개하는 작품을 들으면서 생소한 작곡가들을 여럿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람 하차투리안, 니콜라이 메트너의 음반이 특히 눈에 띄는데,
듣고 있으면 이들이 다른 동료 작곡가들처럼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부당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네요. 메트너가 동시대인이자 가까운 친구였던
라흐마니노프로부터 '당대 최고의 작곡가'라는 찬사를 받았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해도 말이죠.

그래서인지 최근에 발매한 'Contes & Poemes(이야기와 시)'에서는 메트너가 작곡한
피아노곡과 가곡을 비교 수록하고, 음반 기획 의도까지 기고하는 등 각별한 정성을
기울인 흔적이 엿보입니다. 한 연주자가 꾸준히 자신만의 색깔을 찾아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흐뭇한 일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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